2017.03.06 23:58

훈제 돼지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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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곳 근처 건널목에 저녁이 되면 훈제 돼지 고기를 파는 작은 트럭하나가 올 때가 있다. 매일은 아니고 1주일에 한 번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파는 분 같은데 이쪽 동네에서 나름 좀 팔리는 모양인지 주 1회 정도는 온다.


훈제라기 보다는 전기구이 식으로 트럭 뒤에 기기 하나 달고 다니면서 한덩이리씩 빼서 썰어주는 형태인데 보통 만두 1인분 담아주는 1회용 도시락 상자가 살짝 불룩해줄 정도에 만원이니 나쁜 편은 아니다. 집에 갈 때 하나 사서 소주 반 병 정도 안주로 먹으면 가성비가 아주 좋아서 나는 트럭이 올 때 마다 하나씩 사갖고 가는 편이다.


오늘은 사실 저녁을 좀 많이 먹어서 별 생각은 없었지만 바람도 매섭고 유독 아저씨가 좀 측은하기도 해서 평소대로 하나를 샀다. 내가 자주 사가지고 가니까 대충 안면은 알텐데. 집에 와서 견물 생심이라고 부른 배를 무시하고 한두점 베어물었는데, 그 동안과는 맛이 되게 달랐다. 먹을만한 살코기 부위도 적고 절반은 탄맛이 날 정도고 절반은 덜 익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별로였다. 심지어 오늘은 서걱거리는 힘줄도 막 들어가 있어서 먹다가 뱉을 정도.


솔직히 그런 곳에서 파는 음식 대충 수입 저가 고기로 만드는 것일텐데 내가 지금 재료의 질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보면 종종 이런 일들이 있는데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잘 만들어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일 안팔릴 거 같은 것을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얘는 이거 좋아하는가 본데 싶어서 대충 질나쁜 거 팔아치우는 용도로 써먹는 느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무슨 고객 관리 같은 걸 하겠나. 하나라도 더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어차피 그 사람이 나랑 오랜 거래관계가 될 거란 생각도 안 들 것이고. 뭐 그럴 수 있겠지만, 이런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좀 그렇다. 사실 요즘 누군가를 만나다가 흐지부지 되기도 했고, 일터에서도 갑자기 후임이 괜히 지 혼자 술먹고 나한테 술주정했다가 술깨고 뻘쭘해져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괜히 불편하게 대하기나 하고. 이런 일들 속에서 조금 사람 대하기가 지치다보니, 별 것 아닌 일에 그냥 유독 반응을 하게 되었다.


그냥 원래 하던대로 순대나 1인분 사서 소주 한 잔 해야겠다. 이것이야 말로 5천원의 행복. 가난한 내모습이 아직까지는 비참하기보다 인디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같은 운치가 있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뭐 판타지를 통해 일상의 행복이 나름 보장된다면 나쁜 것은 아니리라. 설령 나중에 이 모습이 지긋지긋해질 지도 모르나 (뭔가 집 세면대에서 하수구 냄새같은 것이 올라오면 좀 많이 X같다), 그래도 저열한 인간은 되지 말자, 아직은 이런 쪽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제 정신으로 사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김기덕의 표현이 끌리는데, 나도 너처럼 똑같이 찌질하다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홍상수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약은 거 같다고 생각한다. 실상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것은 별로라 여기고 불편한 부분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범위에서 살짝 다루는 것을 더 매력있게 느끼는 거 같다. 문재인이란 키워드를 외침으로서 나의 개념이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난 메이저에게도 비주류지만, 마이너에게도 비주류가 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오히려 그렇다보니 메이저의 똥꼬를 열심히 핥는 사람들에게 되려 가장 강한 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적어도 솔직하니까. 비논리와 아이러니의 총체적 난국으로 보일지 모르나, 메이저와 마이너가 너무 닮아 있는 것을 보노라면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대음 평론가들 귀때기나 후려치면 기분이 좀 풀리려나.

  • smithhhhhhh 2017.03.07 16:37
    그래서 사람들이 최소한은 보장 되는 대형마트를 찾는걸지도 모르져. 저도 홈플러스에서 파는 옛날 통닭(무려 4900원임)일주일에 한두번은 사먹는거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제 평소 생각과도 일치하는거 같아서 놀랍습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정알못 등으로 몰아가며 본인의 이익도 못 챙기는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양쪽이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지층도 그렇고 그 대상도 그렇고, 심지어 공약도 별 차이가 없죠.

    둘다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에 기인한 지지라기 보다는 둘다 비이성적이고 감성적 측면이 더 크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새누리 지지하는 사람들 보면 '야 시발 난 이게 나쁜건 아는데 그래도 나한테 이득이니까...'
    이런 느낌이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참여정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분명 교육받은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수도권 거주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았고, 그들이 현재 민주당 주요 지지층인데 지지 논리를 보면 나 자신의 이득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득을 위해 지지한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이게 정말 짜증납니다.

    제가 님의 글을 제대로 독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Fomalhaut 2017.03.08 07:04

    네 가지지 못한 자들이 기득권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비이성적 광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결여라고 봅니다. 현 기득권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대안세력으로 보일 때는 대중들 역시 겁이 나더라도 용기를 내어 힘을 모아줄 수 있지만 그냥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보일 경우에는 굳이 줄을 갈아탈 필요가 없죠. (이 부분이 사실 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북한만 해도 김씨 왕조가 저렇게 폭정을 가해도 제대로된 저항을 못해보고 있고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아디 아민, 무가베 같은 말도 안되는 독재자들 아래에서도 딱히 민중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그나마 기름나는 아랍에서 뭔가 움직임이 좀 일어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대중의 저항 정신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 불길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희도 독재하고 싶었으면 국가 경제 신경안썼으면 되었을 듯. 독재도 이루고 나라 형편도 대충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최대 공약수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도 될 거 같음)


    다만 현 기득권이 거의 망삘이 나서 다른 세력의 힘이 크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비전/대안 상관없이 줄을 갈아탈 수도 있겠지요. 노년층이야 어차피 줄 갈아타봐야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구세력을 끝까지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영감 할매들이 태극기 들고 나오는 것은 미쳐서가 아니라 자유한국당 같은 곳이 망하면 자신들도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껴서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고생해서 니네 젊은이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니냐는 명제를 외쳐줄 정당이 이젠 더 이상 없잖아요. 비이성이 아니라 되려 대의 민주주의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하는 행동이라 봐야겠지요. 저 노년 세대들도 4.19, 6.29에 기여했던 사람들이라,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지금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30년쯤 지나 힘 떨어지고 사회에서 외면 받을 시기가 찾아오면 그 땐 태극기 들고 반대편 거리로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 asdfasdf 2017.03.08 11:01
    예전엔 프렌차이즈를 싫어했지만, 요샌 일부 종목에 한해서는 프렌차이즈만 가게되더군요.

    그건 바로 중국집!

    애매한 동네 중국집보다는 프렌차이즈가 뭣보다 탕수육이 더 싸고 양도많고 튀김 상태도 깨끗하고 그래서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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