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제 돼지고기

by Fomalhaut posted Mar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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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곳 근처 건널목에 저녁이 되면 훈제 돼지 고기를 파는 작은 트럭하나가 올 때가 있다. 매일은 아니고 1주일에 한 번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파는 분 같은데 이쪽 동네에서 나름 좀 팔리는 모양인지 주 1회 정도는 온다.


훈제라기 보다는 전기구이 식으로 트럭 뒤에 기기 하나 달고 다니면서 한덩이리씩 빼서 썰어주는 형태인데 보통 만두 1인분 담아주는 1회용 도시락 상자가 살짝 불룩해줄 정도에 만원이니 나쁜 편은 아니다. 집에 갈 때 하나 사서 소주 반 병 정도 안주로 먹으면 가성비가 아주 좋아서 나는 트럭이 올 때 마다 하나씩 사갖고 가는 편이다.


오늘은 사실 저녁을 좀 많이 먹어서 별 생각은 없었지만 바람도 매섭고 유독 아저씨가 좀 측은하기도 해서 평소대로 하나를 샀다. 내가 자주 사가지고 가니까 대충 안면은 알텐데. 집에 와서 견물 생심이라고 부른 배를 무시하고 한두점 베어물었는데, 그 동안과는 맛이 되게 달랐다. 먹을만한 살코기 부위도 적고 절반은 탄맛이 날 정도고 절반은 덜 익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별로였다. 심지어 오늘은 서걱거리는 힘줄도 막 들어가 있어서 먹다가 뱉을 정도.


솔직히 그런 곳에서 파는 음식 대충 수입 저가 고기로 만드는 것일텐데 내가 지금 재료의 질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보면 종종 이런 일들이 있는데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잘 만들어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일 안팔릴 거 같은 것을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얘는 이거 좋아하는가 본데 싶어서 대충 질나쁜 거 팔아치우는 용도로 써먹는 느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무슨 고객 관리 같은 걸 하겠나. 하나라도 더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어차피 그 사람이 나랑 오랜 거래관계가 될 거란 생각도 안 들 것이고. 뭐 그럴 수 있겠지만, 이런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좀 그렇다. 사실 요즘 누군가를 만나다가 흐지부지 되기도 했고, 일터에서도 갑자기 후임이 괜히 지 혼자 술먹고 나한테 술주정했다가 술깨고 뻘쭘해져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괜히 불편하게 대하기나 하고. 이런 일들 속에서 조금 사람 대하기가 지치다보니, 별 것 아닌 일에 그냥 유독 반응을 하게 되었다.


그냥 원래 하던대로 순대나 1인분 사서 소주 한 잔 해야겠다. 이것이야 말로 5천원의 행복. 가난한 내모습이 아직까지는 비참하기보다 인디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같은 운치가 있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뭐 판타지를 통해 일상의 행복이 나름 보장된다면 나쁜 것은 아니리라. 설령 나중에 이 모습이 지긋지긋해질 지도 모르나 (뭔가 집 세면대에서 하수구 냄새같은 것이 올라오면 좀 많이 X같다), 그래도 저열한 인간은 되지 말자, 아직은 이런 쪽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제 정신으로 사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김기덕의 표현이 끌리는데, 나도 너처럼 똑같이 찌질하다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홍상수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약은 거 같다고 생각한다. 실상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것은 별로라 여기고 불편한 부분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범위에서 살짝 다루는 것을 더 매력있게 느끼는 거 같다. 문재인이란 키워드를 외침으로서 나의 개념이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난 메이저에게도 비주류지만, 마이너에게도 비주류가 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오히려 그렇다보니 메이저의 똥꼬를 열심히 핥는 사람들에게 되려 가장 강한 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적어도 솔직하니까. 비논리와 아이러니의 총체적 난국으로 보일지 모르나, 메이저와 마이너가 너무 닮아 있는 것을 보노라면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대음 평론가들 귀때기나 후려치면 기분이 좀 풀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