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관리

by Fomalhaut posted Feb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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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종합병원에서 건강 검진이란 것을 받았었다. 늘 건강할 줄만 알았던 나는, 그러나 매우 높은 혈압수치로 인해 검사 대부분이 중단되고 혈압 내리는 것부터 조치 받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 모두 고혈압이 있었지만 크게 위험했던 일이 없어서 별로 신경안쓰고 살던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고혈압이 무서울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긴 내 경우는 가족력이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과식에 음주가 문제였고 그래서 이미 그 때 지방간 중등도 진단을 받았다. 


5년동안 매번 혈압약 처방을 받으면서 혈압 자체는 많이 낮아졌다. 130대 - 90대이니 일반인들 보단 조금 높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매우 낮춘 수치여서 일찍 혈압약 잘 먹기 시작했네라는 생각을 했다. 지방간은 솔직히 별로 신경을 안썼다. 매년 두어번 정도 피검사를 하는데 간수치 중 하나가(ALT) 기준치에서 5-10 정도 높아졌다가 회복되었다가 하는 수준이었고 다른 부분에서는 별로 큰 이상이 없었기에 여전히 음주에 야식을 즐겨왔다.


그러다가 5년만에 건강검진을 다시 받았는데 자잘한 경미한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정도 빼면 피검사 결과도 최근 결과 중에서 오히려 좋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다만, 지방간이 더 심해졌고 간섬유화가 보인다는 소견을 얻었다. 이로 인해 좀 우울해졌다. 간섬유화, 간경화 이런 말은 뭔가 지방간에 비해 무서운 느낌이 훨씬 크게 든다. 실제로도 그렇고. 스스로의 건강에 방심한 것을 매우 후회하게 되고, 걱정스럽고 그러네. 그래도 아직은 열심히 노력하면 회복이 되는 시기여서 이제 더는 다이어트를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살면서 다이어트에 도전한 적은 종종 있었는데, 항상 끝까지 의지를 유지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다보니 요요가 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다이어트 이전에 비해 5kg 이상 체중이 불어서 지금은 0.1톤을 넘어가는 상황이고. 그래서 이번에도 다이어트 해서 살 좀 뺐다가 유지못해서 더 불어날까봐 걱정이 된다. 뭔가 그럴 때 마음을 딱 잡을 수 있는 환경이 생기면 좋겠는데. 지금처럼 뭔가 쫄아 있는 마음에서는 하루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고플 거 같지만 사람이 간사해서 좀 살만해지면 다시 여러 욕망이 불붙는 지라. 그 이후를 어떻게 견딜까 참 걱정이다.


살면서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 죽고 싶다는 말을 여사로 하고 실제로 그냥 뭔가 탁 놓고 싶은 심정이 생길 때도 있곤 하다. 특히 나는 자기 혐오가 너무 심해서 이미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폄하하고 환멸감을 느끼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열등감을 해결해보고자 아둥바둥 하다보니 그나마 내가 그래도 직장을 갖고 밥은 먹고 사는구나 싶기도 하다만, 자질도 없는 놈이 과욕때문에 스스로를 쥐어짜서 억지로 버티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무척 많이 든다. 그럴 때는 더 쓸쓸해지고. 나 스스로가 싫으니깐 누군가를 내 곁에 두는 것도 포기하고 살고.


근데, 요 정도의 건강검진 결과에도 겁이 팍 나는 걸 보면, 누구보다 생의 의지는 강하구나. 겁이 많아서 겁없는 척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든다. 하루하루 소박하게 사는 것이 끝날까봐 이렇게 무서운데 말이다. 아직 뭐 큰일이 터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습고 부끄럽고 창피한 이런 모습에, 이제는 좀 더 솔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허세 떨다가 이번 생이 망하면 큰일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저녁에 술 한 잔 하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왔구나. 순대나 떡볶이 사들고 좁은 방에 들어가 소주 반 병 정도 딱 마시고 알딸한 기분에 노래 들으며 잠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순간들도 막상 그렇게 무한정 주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싶으니 좀 서글프다. 운동은 막상 몰두해서 즐겁게 했던 적도 많아서 크게 걱정이 없는데, 술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네. 간섬유화라, 에고 참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