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슬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헤프다 라는 개념이 오남용되고 있다
이 헤프다라는 말은 대게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용례로써 몸을 쉽게 쉽게 대준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되곤 하는데
사실 [헤프다] 의 궁극적인 대상은 몸뚱아리가 아니라 정情이다 정.
이를테면 금사빠니 얼빠같이 지조없고 줏대없는것을 헤픔 이라고 할수 있다
한번도 여자를 못 만나본 순딩이 청년이 문란한 성생활을 영위하는 여성이나 성노동자보다 더 헤플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문란함도 현대적 의미의 문란함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헤픈 남자이다.
이 헤픔이라는 것은 꼭 이성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관계에 두루두루 존재한다
어렸을때 꼭 붙어다녔던 소꿉친구, 날 무척 예뻐하셨던 선생님, 엄청 친하게 지내다가 반이 갈리면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숱한 친구들.
내가 아끼던 책들과 사물들. 언젠가는 나만 남기고 떠날 지인들,사람들.
이게 점점 심화되면 얼굴만 흘깃 보던 예쁜 길고양이들에게도 정을 내주게 된다.
헤픔이나 문란함이 나쁜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살았을때 나중에 닥칠 후환이 너무나도 무겁고 막막하다.
애정의 대상이 희미해지고 사라져서 다시는 볼수 없는 내가 어찌할수 없는 고통, 사무치는 그리움이 당신이 정을 주는 순간, 예견되어있는것이다.
언젠가는 그 큰 슬픔의 순간이 찾아온다. 커멍쑨.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사는 독고다이 인생을 사는것이다. 원래 사람은 외로워. ㅇㅇ
내글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음 맥락에는 내가 오롯이 정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 영원할 나와 나의 미학이다라는 말을 할 것을 예상하고 있을것이다.
아냐 맞긴 한데 꼭 그러친 않아. 나는 때때로 돌발변수를 일부러 만든다 ㅎㅎㅎ
사람이 육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형상에 갖혀있는 이상 사회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로 인해 서로 어느정도 정을 주고받게 된다
철면피처럼 나는 아무에게도 정을 내주지 않겠다 하고 꿍하고 앉아있는것은 힘들뿐더러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모두에게 정을 내주되 아무에게도 정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은 무엇이냐면 모두에게 웃으며 대하면서 괜한 악감정 만들지말고 일반적인 정을 줄뿐 경솔하게 정을 깊이주지 않으며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정을 줄때는 그것이 정말 정이 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신중하고 깊게 사색해봐야하며 이는 시간이 좀 필요할것이다 또 너무 많은 것들에게 깊은 정을 노나주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심각할정도로 깊이 애정하는 소수의 대상들에게 있어서도 나보다 그것에게 정을 더 많이 주면 안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랑하지만 그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된다.
항상 자기주관과 자아, 그리고 그 집결체인 자신의 미학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고하게 지키고 가장 사랑하여야만 한다
그렇다고 조금밖에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꼭 보면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음. 누구를 정말정말 울트라슈퍼하드 넘사벽 무한대로 사랑하면 거기다 플러스 일 정도 더해서 나를 사랑하면 되는것이다.
흐음... 생각해보니 수학적 개념으로는 둘다 무한대 무한대. 사랑의 매스가 같아지는군.
그렇지만 이건 수학적 개념이 아니고 인문학적 개념이니 잘 알아듣으리라고 믿는다
너무 사랑하고 너무 정을 쏟아부운 후 끝이 나버리자 자신을 상실할정도로 괴로워하며 찡찡대는 가련한 영혼들에게 바친다
글을 보니 좀 훈계조가 된 것 같은데 대학 1년 다니고 휴학한, 여자도 많이 못 만난 본 풋내기가 헤어짐을 겪어봤음 얼마나 겪어봤겠습니까
그냥 귀여운 개념으로 봐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