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장)
안녕하세요 홍대입구 3번 (공항철도) 빅판입니다.
잘지내셨는지요 제가 노숙인으로 지낸 시절을 돌이켜보면
혼자보단 둘이 어울려 다니는게 여러모로 좋다고 느꼈습니다.
30대시절 알고 지냈던 청년이 생각났고
현재 청년의 삶이 궁금하면서 이번호 글 입니다.
나는 인력사무실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하 다니는
중이다 생존을 위해서 다니는 들개라 해도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친구나 동료들은 들개가 되버린 날
벗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들은 들개를 거부하니깐
충청남도 천안역 부근 인력사무실에 있는 숙소를 집으로
정해서 현재 나는 기거중에 있다.
그곳에서 이십대 후반의 청년을 만나 인연이 됐고
청년은 나와 친해지길 원하는듯 했다.
서로가 어려운 처지와 숙소에 같이 있다는 것은
남다른 호감을 줄수도 있어 청년을 멀리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은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다가오면서 본격적인 장마철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경험상 인력사무실 노동자들이 힘겨운 가뭄에
시간이 될거라고 나는 알고 있다.
(두번째 장)
건설업일 특히 인력사무실은 물과 기름같이
어울릴수 없는 사이면서 올해 장마철에는
새벽에 폭우가 많이 내려 그나마 예약했던 일들도
계속 취소되 사무실 일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숙소에 있는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갈수록 일거리를
얻지못해 공치는 날이 많아졌고 수중에 돈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해 서로는 꽤나 우울해 졌다.
실망스런 하늘만 보던 어느날 인력사무실 소장이
늦은 저녁에 불쑥 숙소로 찾아와서
"일이 없어서 인력사뮤실 숙소를 폐쇠압니다.
내일까지 짐들 챙기고 갈곳 찾아들 가십시요" 말했다.
나는 없는자다. 가진자가 하는 맣은 어느해 부터 인가
숨죽이며 순종하는 것에 길들여져 익숙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돈도 바닥나고 잠자리 마져 잃게 되다니"
낮빛은 절망으로 흐르고 거리신세가 된 무력감에
어쩔줄을 몰랐다.
짐이라곤 해봐야 안전화와 작업복 넣은 베낭과
내복 하나가 전부이다.
같이 현장일 몇번 했던 사람이 사정을 듣고 찾아와서
숙소에 멍하니 있는 우릴보며 자신의 임시 거주지로
(세번째 장)
가자고 한다.
가보니 흡사 공포 영화 무대처럼 철거하기 전에
폐가 였지만 이곳은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수 있고
그나마 편히 숨쉴수 있어 고마운 곳 이었다.
같이 지낸 이틀이 자나고서 비오는 날에 폐가의 주인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우릴보며 트집과 언성을
높였다. "도둑 고양이가 들락거리면서 똥, 오죽싸니
문단속 잘하라고 했는데 왜 안하느냐!" 그러면서
청년을 보며 나가라며 소리지르며 욕하기 시작했다.
이날따라 오후부터 내리던 비는 푹으로 편해갔고
밤은 점점 거칠어져 갔다. 나는 "이 폭우에 어딜가냐?"
하며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청년을 몰아 세웠다.
듣기만 하던 청년은 조금후 "알았어" 하는 침울한
한마디와 함께 시커먼 폭우 속으로 들어갔고
비와 어둠은 그를 반갑게 맞이 하였다.
다음날 청년과 나는 우연히 만나 같이 성남이란
도시로 떠나갔다 "천안이여 굿바이~"
잡지구입 감사드립니다
홍대입구 3번 (공항철도) 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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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밍 타이거 앨범을 사러 김밥에 갔더니 오링나고 다른 것만 잔뜩 사들고 나오게 되었다.
어딜 갈래도 역 앞에 쇼핑몰이 하나 더 들어서겠다고 길을 막는 통에 지하 통로로 가로지를 작정으로 내려갔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빅이슈 판매원도 있을 수 없는 변두리 수도권 도시이기에 오랜만에 판매원에게 한 부 청했다.
위 글은 자필로 작성되어 동봉 포장된 글로서,
리얼리즘 소설인지 아니면 회고록인지 전말을 알 수 없는 상태이나 내 옛? 시절이 떠올라 옮겨보았다.
당시 월 80정도면 방세 내고 용돈 할 정도는 돼서 사실 인력을 그리 열심히 나간 건 아니었던 데다가
여름 끝물에 실외작업 하다 열사병 날 뻔 한 뒤로 곧 그만두기도 해서 몇 달 하지도 않았지만...
그 밑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느낌이 주는 불쾌감은 평생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당시보단 덜하긴 해도 여전한 암운을 씻기 위해 또 이력서를 돌려야 하는데 그게 너무 하기 싫어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
좋은데요? 저도 그런 바닥의 기억이 있는데 정말 종이 한장 차이네여. 저희 학교 앞에도 항상 빅이슈 판매했는데 항상 애들은 마치 그 사람이 여기 없다는 것 처럼 피해다녔던 기억이.